한 방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하나만 제대로 만들면 그때부터 이름이 알려질 거라고 막연히 믿었어요. 그래서 늘 큰 걸 준비했죠.
준비는 언제나 그럴듯했습니다. 기획을 쓰고, 구조를 다시 짜고,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찾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있더군요. 정작 밖으로 나간 건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몇 년 동안 제 손에 남은 게 거의 없었어요. 쌓아둔 메모들을 정리해봤는데 오래 묵혀서 의미를 잃은 것들만 잔뜩 나왔네요..
예전엔 뭘 시작하기 전에 책부터 많이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은 뭔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는데 막상 만든 건 거의 없었죠. 퀀텀 점프를 꿈꿨나 봐요.
이름을 한 번에 만들려던 시도도 있었습니다. 앱스토어에 브랜드명으로 앱을 내고 싶어서 개인사업자를 내고 DUNS 넘버까지 준비했어요.
조직 계정이 된다는 글은 많았죠. 그런데 실제로는 개인 계정으로 처리되더군요. 이름을 먼저 세워두고 안을 채우려던 순서가 그때 한번 어긋났습니다.
그런데
요즘 남아 있는 걸 세어봤습니다. 앱스토어에 올린 앱 몇 개, Claude Code 로 만든 작은 도구들, Threads 480편과 X 346편. 하나하나는 전부 사소해요.
큰 걸 노리고 만든 건 그중에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필요해서 만들었거나,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손을 댄 것들입니다.
v1.0.0 을 올리고 첫 버그 리포트를 받았을 때는 좀 막막했어요.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안 된다고 해서 v1.0.1, 1.0.2, 1.0.3, 1.0.4까지 갔습니다.
마지막에 해결됐다는 답장 한 줄을 받았는데 아, 이게 또 쾌감이 있네요. 그 며칠은 어디에도 안 적혀 있습니다. 스토어에는 버전 번호만 남았죠.
동네에 등록하기 어려운 수영장이 있어서 결원이 생기면 알림을 보내주는 작은 도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한 번은 알림을 늦게 봐서 놓쳤고, 다음 알림엔 보자마자 신청해서 등록에 성공했어요.
플레이스토어는 개발자 계정만 만들어두고 앱을 안 올렸더니 계정 삭제 대상이라는 메일이 왔더라고요. 부랴부랴 밀린 안드로이드 앱을 올렸습니다. 브랜딩이라고 부르기엔 좀 민망하지만..
가장 복제하기 어려운 것:
기능은 하루면 따라 만들어집니다. 화면도 금방 따라 그려져요. 가격은 더 쉽게 따라오죠. 그런데 v1.0.4까지 붙잡고 있던 그 며칠은 아무도 못 가져갑니다.
작은 결과물들을 옆으로 늘어놓으면 왜 이 사람이 매번 덜어내는 쪽을 고르는지가 저절로 읽힙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읽히는 그 흐름이 서사인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아직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아닙니다. 70%쯤 완성된 것들이 여전히 잔뜩 쌓여 있고, 덜어내자고 다짐하면서 매번 기능이 늘어나요.
쌓여만 있던 미완성품들을 요즘은 매일 하나씩 꺼내 그냥 출시하는 중이에요. 완성해서 내보내는 게 아니라 내보내면서 완성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openclaw, hermes, paperclip, orca 까지 이것저것 붙여보고 있는데 아직 원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도 방향은 이쪽인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큰 걸 준비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작은 걸 하나 더 올려두려고요. 층은 나중에 세면 되는 것 아닐까요..